매화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어둠에 이르기까지 먼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 흰 봄 햇살도
꽃잎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2012년.4월20일 진양벨리cc에서 담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