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생가 방문기
다산 정약용생가 (남양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다산(多産)으로 생각될 만큼 많은 책을 생산하였다. 이곳저곳에 흔적을 많이 남긴 데다, 여러 형제가 함께 이름이 나 언덕 위의 높은 봉우리가 되었으므로 다산(多山) 같기도 하다. 유교에의 천착과 함께 천주교의 머리로서의 역할도 작지 않아, 종교를 두고 수많은 논란을 야기해서 보는 이에게는 다사(多思)를 요구한다.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조안면 능내리)
다산 정약용선생 묘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7호(1972.05.04 지정)
부인 풍산홍씨와 합장한 원형의 묘로 단분이며 남향하고 있고, 묘 앞에는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갖춘 비가 있다. 비신에는 2열로 ‘문도공다산정약용 숙부인풍산홍씨지묘(文度公茶山丁若鏞 淑夫人豊山洪氏 之墓)’라고 씌어 있다. 이외에 상석, 그리고 좌우에 망주석이 배열되어 있다. 낮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가까이 흐르는 한강이 내려다 보인다. 묘 앞에는 비석상과 되어 있다.
다산은 자신과 관련된 인물들의 전기적 자료를 정리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회갑을 맞아서는 자서전적 기록인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저술하였다. 정약용 자신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저서는 연구서들을 비롯해 경집에 해당하는 것이 232권, 문집이 260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다산은 500여 권에 이르는 이 방대한 저서를 정리하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편찬하였다. 이 저술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