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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홍릉을 찿아서

자공 장정구 2021. 1. 6. 19:08

 

홍릉은 조선 제26대 왕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閔氏)의 무덤으로 을좌신향(乙坐辛向)한 

동봉이강릉(同封異岡陵)이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67세로 승하하여 

같은 해 3월 3일 남양주시 금곡동에 초장봉릉(初葬封陵)되었다.

 

명성황후 민씨는 1895년(고종 32) 8월 20일 경복궁에서 일본 낭인(浪人)들에게 시해 당하였다. 

1897년(광무 1) 11월 22일 한성부 동부 인창방(仁昌坊) 청량리(현 숭인원)에 처음 장사지냈으며, 

1919년 1월 16일 현재 위치로 능을 옮겼다.

능 상설(象設)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선포에 따라 고종이 황제가 되면서 능역 조성도 

명나라 태조의 효릉(孝陵) 방식을 따랐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없었던 구조물이 대폭 확장되었다

능침의 호석(護石)인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대신 능침 앞에서부터 기린, 코끼리, 사자, 해치, 낙타 각 1쌍, 

마석(馬石) 2쌍을 2단의 하대석 위에 올려놓았다. 또, 종래의 정자각(丁字閣) 대신 일자형(一字形)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으며, 문인석의 금관조복(金冠朝服)과 무인석의 성장(盛裝)이 강조되었다.

순명효황후 민씨는 1904년(광무 8) 9월 28일 경운궁 강태실(康泰室)에서 33세로 죽어 같은 해 11월 29일 

양주군 용마산 내동(현재 어린이대공원 경내)에 초장되어 유강원(裕康園)이라 하였다. 1907년(강희 1) 

황후로 추봉되고 능호도 유릉이 되었으며, 1926년 6월 5일 이곳에 천릉되었다.

순정효황후 윤씨는 1966년 1월 13일 72세로 죽어 이곳에 묻혔다. 능의 상설로 홍살문과 석물 침전은 일직선상이나 

능침은 옆으로 비꼈으며, 현대 감각을 주는 문인석과 무인석은 사실적으로 입체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홍유릉의 상설 규모로는 각기 곡장(曲墻) 3면, 연화(蓮花)와 모란문(牡丹文)이 조각된 병풍석 12면, 

난간석 12칸, 혼유석 1, 망주석 2, 명등석 1, 침전 1, 비각 1, 표석 1, 망료위(望燎位) 1, 문인석 2, 무인석 2, 

기린석 2, 상석(象石) 2, 사자석 2, 해태석(獬豸石) 2, 낙타석 2, 마석 4, 홍살문 1, 재실 1, 수라간·수복방·

금천교 등이 있어 전통적인 제도를 따르고 있다. 유물로는 제기류(祭器類) 7점이 있다.

여기부터는 홍릉 재실인데 능참봉이 거주하며 관리를 하거나 재를 준비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