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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릉

자공 장정구 2018. 2. 13. 17:46

                선 정 릉

 

선릉과 정릉은 임진왜란 때 파헤쳐져 재궁이 전부 불타 버렸기 때문에, 선릉과 정릉의 세 능상 안에는 시신이 없다. 정릉의 경우는 좀 더 특수한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침에서는 아예 잿더미들만 나왔지만 중종의 능침에서는 시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신이 중종의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원로 대신에서부터 궁중의 나인들까지 동원되어 살펴보았지만 중종이 승하한 지 오래 되어 외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 없었고 남은 사람들도 고령이라 확인이 힘들었다. 남아있던 기록과 시신의 모습이 달랐고 중종이 승하할 당시가 더운 여름이었는데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 때문에 왜군이 왕릉을 욕보이기 위해 가져다 둔 시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혹시나 중종의 시신일지도 모르기에 사람들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선조는 이 시신을 다른 곳에 잘 묻어주라고 명령한다.[2] 이후 전해져오는 야담에는 능에서 밤마다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은 옥체를 능에 모시지 않은 탓이라고 했었다는데, 어쨌든 선정릉의 세 능상은 모두 비어있으며(정확히는 보수하면서 새로 만들어 올린 의복들만 묻혀있다), 그 시신이 정말 중종의 시신이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은 아직은 없다.

 

 2009년 6월 동구릉, 광릉, 태릉 등 왕릉 40기가 일괄적으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조선 왕릉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지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왕릉 40기 전체를 실사한 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야 할
가치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