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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돛배~ 원호장군 전승비

자공 장정구 2020. 9. 6. 21:03

오늘은 한강상류 여주 황포돛배길 주변과 원호장군 전승비 주변을 돌아 봅니다

 

황포돛배는 말 그대로 누런 포를 돛에 달고 그 바람의 힘으로 물자를 수송했던 배이다. 

여주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의 상류지류인 남한강을 끼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색으로 인해 조선시대 4대 나루 중 이포와 조포나루를 보유하고 있다. 

이포와 조포나루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물자교역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주는 물자 교역이 번성하였던 중심 상업도시로서 가치가 있는 고장이라 할 수 있다

 

황포돛배는 대부분 0.4t에서 0.5t 정도의 작은 배로 어업이나 물자 수송 등에 쓰였다. 

몸통은 스기나무로 만들고 노는 쪽나무로 만들며, 돛대는 죽나무와 아주까리나무로 만든다. 

돛대는 6m 정도로 길게 세우고, 황토를 물들인 기폭을 매단다. 

가로 2m 50㎝, 세로 6m의 기폭을 황톳물에 담가서 물을 들인 후에 잘 말려서 사용한다. 

황톳물은 두세 번 반복하여 들인다. 한번 마련한 기폭은 2~3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강건너 황포돛배 유람선이 보입니다.

 

원호(1533~1592년)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중영(중영), 본관은 원주(원주)이며

첨지 중층부사 송수의 아들이다. 김덕수의 문인으로 명종22년(1567년)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 단전 부사에 이어 경원부사로 있을 때는 니탕개의 침입을 격퇴했다.

선조20년(1587년) 전라 수군절도사로 좌도에 침입한 왜구를 막지 못했다

하여 강진에 유배되었고, 곧 풀려나와 만포첨사, 평안우후를 역임하고 향리로 은퇴했다.

 

원호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패주하는 관병과 민병등 300여명을 규합하여

신륵사의 팔대숲일대에서 도강을 기도하는 왜병을 섬멸하고 구미포에 집결한

왜적을 새벽에 기습하여 몰살시키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이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고향인 이곳에 전승비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