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여주 신륵사
요약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379년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으며, 1382년 대장각 안에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발원해 만든 대장경을 봉안했다.
조선시대 때 억불정책으로 절이 위축되었으나 1469년 영릉의 원찰이 되었고, 1472년 절이 확장되고 다음 해에 보은사로 개칭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671, 1792, 1858년에 각각 중수되었다.
현재 금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여주 신륵사 조사당(보물 제180호)·명부전·적묵당·노전·칠성각·종각·구룡루·시왕전 등이 있다. 또한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제225호)·여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6호)·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석탑. 보물 제225호. 높이 300cm. 이 석탑은 2층의 기단부 위에 다층의 탑신부가 있어 기본적인 구조는 신라나 고려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각 부재의 세부조형은 전혀 다르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탑은 기단에서 탑신에 이르는 각 부재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지복석(地覆石) 위에 복련(伏蓮)이 조각된 하층 기단부가 있으며, 그 중석(中石)에는 화형(花形)으로 장식된 우주(隅柱)가 있고 그 사이에는 파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
신라 진평왕(579~631 재위)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으며, 신륵사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7 여주목불우조(驪州牧佛宇條)에 의하면 신륵사는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璧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벽사는 고려시대에 경내의 동쪽 언덕에 벽돌로 된 다층전탑이 세워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절이 대찰(大刹)이 된 것은 나옹화상(懶翁和尙:혜근)이 입적할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난 뒤부터이다. 1379년(우왕 5) 각신·각주 등이 절의 북쪽에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나옹의 초상화를 모신 선각진당(先覺眞堂)을 세우면서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다.
극락보전
보호수 은행나무 수령 600년
신륵사에 있는 고려시대 전탑. 보물 제226호. 높이 940cm. 한강변에 있는 암벽 위에 건립된 것으로,
지대석 위에화강석으로 된 7층의 기단이 있고 그 위에 높은 6층의 탑신부가 있다.